휠체어에 앉은 체스의 왕자, 그리고 추락하는 황제: 노르웨이 체스를 뒤흔든 이변

체스계에서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은 숨 쉬듯 흔하게 쓰인다. 아마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자주 언급될 것이다. 하지만 알리레자 피로우자(Alireza Firouzja)만큼 이 수식어가 완벽하게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그만큼 종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한때 마그누스 칼센(Magnus Carlsen)이 자신의 뒤를 이을 적통 후계자로 직접 점찍었던 이 ‘체스의 왕자’는, 얄궂게도 다른 이들이 왕위 계승 서열을 비집고 들어와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오슬로의 다이히만 비에르비카(Deichman Bjørvika)에서 열리고 있는 노르웨이 체스(Norway Chess) 토너먼트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왕좌를 향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주 루마니아 대회에서 발목 부상으로 5라운드 만에 기권해야 했던 피로우자는 현재 휠체어에 의존해 경기장에 나타난다. 다리에 보조기를 찬 채 엉거주춤한 각도로 의자 위에 다리를 뻗고, 매일 4시간이 넘는 혈투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경기 중 산책을 즐기던 그의 발이 묶여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선수들은 피로우자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중이다.

육체적 고통조차 그의 천재성을 가리지는 못했다. 피로우자는 3라운드 아마겟돈(Armageddon) 타이브레이크에서 현 세계 챔피언 구케시 도마라주(Gukesh Dommaraju)를 꺾으며 단독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클래식 부문 초반 두 라운드에서 이미 승리를 거머쥐었던 그는 현재 7.5점을 기록, 2위 프라그나난다 라메시바부(Praggnanandhaa R., 4.5점)를 3점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다. 반년 만에 출전한 클래식 대회에서, 그것도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히 판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4년간 그의 곁을 지켜온 코치이자 불가리아의 그랜드마스터 이반 체파리노프(Ivan Cheparinov)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솔직히 어떻게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발목은 퉁퉁 부어있고, 다리를 위로 올리고 있지 않으면 욱신거리는 통증이 끊이지 않거든요. 체스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신경 쓰이는 통증을 안고 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칼센과도 맞붙었던 베테랑 체파리노프는 피로우자를 향해 자신이 본 ‘역대 가장 재능 있는 선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피로우자가 부상 투혼 속에서도 비상하고 있다면, 영원할 것 같았던 황제 마그누스 칼센의 날개는 속절없이 꺾이고 있다. 3라운드의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단연 칼센의 참패였다. 백을 잡은 인도의 프라그나난다는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 끝에 디펜딩 챔피언 칼센을 무너뜨리며 이번 라운드의 유일한 클래식 승리를 챙겼다. 경기 중반부턴 분명 칼센이 주도권을 쥐고 확실히 유리한 포지션을 점했지만, 그는 끝내 이 우위를 굳히지 못했다. 반면 프라그나난다는 끝까지 날카로운 전술적 감각을 유지하며 결국 판세를 뒤집어냈다.

이로써 칼센은 3라운드 만에 벌써 두 번째 클래식 패배를 떠안게 되었다. 1라운드에서 피로우자에게 일격을 당했던 그는 현재 1.5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3번의 경기에서 단 0.5점(0.5/3)을 얻는 데 그친 뼈아픈 부진은 그의 라이브 레이팅에도 치명타를 입혀, 오슬로에서만 무려 13.7점이 증발해버렸다.

한편, 빈센트 카이머(Vincent Keymer)를 아마겟돈에서 꺾고 4점을 확보한 웨슬리 소(Wesley So)는 다가오는 목요일 4라운드에서 흑을 잡고 선두 피로우자와 맞붙는다. 절대 권력이 흔들리고, 휠체어에 앉은 천재가 판을 지배하는 지금. 노르웨이 체스의 권력 지형은 그 어느 때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