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으로 돌아온 레전드들: JYP의 ‘퇴근길’과 앤스랙스의 10년 만의 귀환

요즘 음악 씬을 지키는 굵직한 고인물들의 행보를 보면 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 나이가 들고 커리어가 쌓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위치에서 대중을 만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금 자신들의 뿌리로 묵직하게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전혀 다른 두 대륙에서,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제이와이피(JYP)와 앤스랙스(Anthrax)의 최근 소식은 베테랑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폼을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다.

먼저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최근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의 행보는 거의 관료에 가깝다. 그는 얼마 전 출범한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며 무려 ‘장관급’ 예우를 받는 인사가 됐다. 가요는 물론이고 웹툰, 게임,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의 전반적인 국제 교류 전략을 총괄하는 무거운 자리다. 당장 오는 29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채택되어 관련 현안에 대해 질의응답까지 진행할 예정이니, 겉보기엔 영락없는 정치권 인사의 스케줄이다.

하지만 정작 본업인 가수로 돌아온 그의 새 작업물은 이 거창한 직함과 정반대의 소박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다음 달 5일 오후 6시에 발매되는 새 디지털 싱글 ‘해피 아워(퇴근길)’가 그 주인공이다. 작년 ‘아니라고 말해줘(이지러버)’ 이후 약 1년 만에 내놓는 이 곡은 연말을 맞이한 직장인들의 고단한 퇴근길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노랫말을 담았다. 지난 27일 오후 공식 SNS를 통해 공개된 3장의 영화 스틸컷 같은 티저는 제법 골때린다. 사무실 파티션에 기대 졸거나 믹스커피를 타며 주변 동료들의 눈치를 보는 박진영의 묘하게 현실적인 표정은 헛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권진아가 직장 상사로 분해 등에 핑크색 요정 날개를 달고 요술봉으로 훈계하는 컷까지 더해지니, 장관급 위원장의 일탈치고는 유쾌하기 짝이 없다. 국회 출석의 무거움은 잠시 내려두고 대중과 호흡하는 광대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는 영악함이 엿보인다.

이렇게 지구 한편에서 노련한 팝의 거장이 믹스커피와 요정 날개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또 다른 전설적인 베테랑들이 앰프 볼륨을 끝까지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바로 스래시 메탈의 아이콘, 앤스랙스의 귀환이다.

2016년 명반으로 꼽히는 ‘For All Kings’ 이후 무려 10년 만의 정규 앨범 소식이다. 메탈 팬들의 목이 빠지기 직전이던 지난 11일(현지 시간), 앤스랙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원년 멤버인 스콧 이안을 비롯해 조이 벨라도나, 프랭크 벨로, 찰리 베난테, 존 도나이스까지 핵심 멤버 전원이 모인 사진을 기습 공개했다.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우리가 돌아왔다 5.15”라는 짧고 강렬한 캡션과 함께 말이다. 오는 9월 18일 발매되는 이들의 12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은 ‘Cursum Perficio’로 확정됐다. 이 라틴어 문구는 마릴린 먼로 자택 현관 시멘트에 새겨져 있던 것으로 유명한데, “내 여정은 여기서 끝난다”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반대로 “나는 끝까지 해낼 것이다”라는 묘한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어 밴드의 현재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리드 싱글 ‘It’s For the Kids’는 15일에 선공개된다.

오랜만의 복귀인 만큼 밴드 내부의 에너지도 최고조에 달해 있는 듯하다. 드러머 찰리 베난테가 2024년 ‘메탈 해머’와 가졌던 인터뷰를 보면 앨범 수록곡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읽힌다. 이미 13~14곡 정도의 작업을 마쳤다는 그는 이번 신보가 밴드가 걸어온 궤적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2011년 작 ‘Worship Music’의 ‘In The End’나 전작의 ‘Blood Eagle Wings’가 주었던 특유의 에픽한 감성을 이어가는 곡이 있는가 하면,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트랙도 세 곡이나 포함됐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구상했다는 ‘The Edge Of Perfection’ 같은 곡은 특유의 멜로디와 코드, 그리고 폭발적인 공격성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고 하니 기대감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이번 앨범의 녹음이 푸 파이터스의 수장 데이브 그롤의 ‘스튜디오 606’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스콧 이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은 “푸 파이터스와 너바나의 박물관”이자 가장 완벽한 록의 아지트다. 그저 음악을 미치도록 사랑해서 성공의 정점에 오른 이들의 숨결이 밴드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3월 ‘에버블랙’ 팟캐스트에서 베난테가 이번 신보를 밴드 커리어에서 “매우 중요한 릴리즈”라고 못 박으며 역대급 투어 일정을 예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관급 위원장 타이틀을 달고 핑크빛 요정 날개를 단 채 소박한 위로를 건네는 K팝의 거장과, 10년의 침묵을 깨고 라틴어 선언문과 함께 묵직한 디스토션을 뿜어낼 준비를 마친 메탈의 아이콘. 장르도, 스타일도, 대중에게 말을 거는 방식도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이들의 행보는 결국 진짜 고인물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흥분시킬 줄 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커리어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여전히 현역으로서 판을 흔들 준비가 되어 있는 이 베테랑들 덕분에, 다가오는 연말 음악 씬의 스펙트럼은 꽤나 다이내믹해질 전망이다.